"은혜는 순종을 낳는다" (창 6: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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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이 세상에 사람들이 번성하기 시작하면서 죄악도 같이 번영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모든 계획이 악함을 보시고 이 세상을 다시 새롭게 하실 것을 계획하십니다. 이런 패역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그 시대의 사람들과 달리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이 한 사람과 함께 세상을 다시금 창조하실 것입니다.
Thrust: 하나님께서 지으신 온 세상이 악으로 가득하게 되자, 하나님은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은혜를 입은 한 사람을 통해서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계속해서 펼쳐가십니다.
Homiletical Idea: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이 세상의 방식을 거절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순종의 삶으로 이끈다.
Application:
1.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이 세상의 사람들과 동행하는데서 벗어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로 이끈다.
2. 하나님의 은혜는 보이지 않는 일에 대해서조차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이끈다.
3.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에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도록 한다.
1. 관찰/해석
2절: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구분된다. 사람의 딸들은 누구인가?
2절: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신들의 아내를 선택하는 기준은 ‘바라봄'이다. 창 3:6의 하와가 선악과를 바라볼 때와 동일한 단어다. 창세기 13:10에 롯이 자신이 살 거처를 정할 때도 ‘바라봄'을 기준으로 선택한다.
2절: ‘하나님의 아들들이' 복수로 사용되었다. 한 사람이 사람의 딸을 취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2-3절: 하나님의 이름이 다르게 사용되었다. 2절에서는 ‘하나님', 3절에서는 ‘여호와'
3절: 하나님의 영이 등장하고, 하나님의 성령이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의 결혼이 하나님이 보시게 잘못 되었음을 보여준다.
3절: 육체가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들은 원래 육체가 아니었던가?
3절: 120년의 의미는?
4절: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사이에서 ‘힘이 센' 사람들이 탄생한다.
5절: 온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하다.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 인간의 본성이 타락했음을 보여준다.
6절: ‘한탄하사’ - 나함, ‘근심하시고’ - 나자브,
7절: ‘한탄함’ - 나자브
8절: ‘그러나' - 당시 사람들과 ‘노아'를 구분하는 접속사.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 온 세상이 죄로 물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은혜는 한 사람에게 머문다.
9절: ‘사적' - generation, תּוֹלֵדוֹת (후손), net. ‘account’
9절: ‘노아는 의인이요' - 노아가 의인이라는 말의 의미는? Net. “Noah was a godly man’ he was blameless.” 노아는 경건한 사람이었다.

3. just, righteous, in conduct and character: a. towards God Gn 7:1; 18:23, 24(), 25(), 26, 28 (J) 20:4 (E), Hb 2:4; Mal 3:18

노아, 욥, 다니엘은 구약 성경에서 의로운 사람의 모델로 제시된다. ch. 7:1; Ezek. 14:14, 20; 2 Pet. 2:5
9절: ‘완전한 자라' - esv. ‘blameless’

The Hebrew term תָּמִים (tamim, “blameless”) is used of men in Gen 17:1 (associated with the idiom “walk before,” which means “maintain a proper relationship with,” see 24:40); Deut 18:13 (where it means “blameless” in the sense of not guilty of the idolatrous practices listed before this; see Josh 24:14); Pss 18:23, 26 (“blameless” in the sense of not having violated God’s commands); 37:18 (in contrast to the wicked); 101:2, 6 (in contrast to proud, deceitful slanderers; see 15:2); Prov 2:21; 11:5 (in contrast to the wicked); 28:10; Job 12:4.

여기서 ‘흠이 없다'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고, 때문에 하나님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와 대조되는 모습은 교만하고, 속이는 악한 모습이다.
이어지는 구절이 의롭고 흠이 없는 노아의 삶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창세기 5장에 등장하는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한 대표적인 사람이다.

tn The construction translated “walked with” is used in Gen 5:22, 24 (see the note on this phrase in 5:22) and in 1 Sam 25:15, where it refers to David’s and Nabal’s men “rubbing shoulders” in the fields. Based on the use in 1 Sam 25:15, the expression seems to mean “live in close proximity to,” which may, by metonymy, mean “maintain cordial relations with.”

하나님과 따뜻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 - ‘동행’의 의미
11절: ‘패괴하여' - esv. ‘corrupt’, net. ‘ruined’ 하나님이 보시기에 온 세상이 도적적으로 부패하여있다.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 폭력, 살인, 불의가 가득한 세상! 이토록 부패한 세상은 주님과 동행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노아의 삶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온 세상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걸어가는 길은 유난히 눈에 띌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눈에는 ‘참된 교회'가 보인다. 왜냐하면, 온 세상 사람들이 굽은 길을 향해 걸어갈 때 하나님의 교회는 진리의 길을 향해 걸어가기 때문이다.
12절: ‘패괴하였으니' 라는 단어 반복. ‘패괴함이었더라' ‘샤하트' 라는 단어의 반복!
12절: ‘하나님이 보신즉' - 이 세상의 눈으로 보는 것과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노아 시대가 악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패역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13절: ‘하마스' - ‘폭력', 신체적인 폭력을 의미하는 단어!
13절: ‘그 끝날이 내앞에 이르렀으니' - 하나님의 신적인 심판을 가리키는 단어!
창조주 하나님은 동시에 심판주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만드시는 동시에 이 세상을 공의로 판단하시는 분이시다.
‘earth’ 땅이라는 단어가 노아 내러티브에서 무려 48회 등장한다.
13절: 노아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아담과 같이 하나님의 계획을 듣는다.
14절: 하나님의 디테일한 설명과 명령을 보라. ‘방주' 의 등장이다. 온 세상을 끝내기로 작정하신 하나님께서 ‘방주'를 마련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은 동시에 구원을 의미한다.
18절: ‘나의 언약' - esv. ‘covenant’, 이 단어는 창세기에서 26번이나 등장한다. 성경에서 최초로 ‘언약'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약속을 체결하시는 장면이다. 노아와 언약을 맺으시면서 노아의 가족들을 함께 구원의 방주로 인도하신다. 노아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가 그와 연결된 가족들을 함께 묶고 있다.
19절: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 하나님께서 노아 가족과 동물들을 방주 속으로 이끄시는 장면은 하나님께서 홍수 심판을 통해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짐작케한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22절: ‘다 준행하였더라' -

22 וַיַּ֖עַשׂ נֹ֑חַ כְּ֠כֹל אֲשֶׁ֨ר צִוָּ֥ה אֹתֹ֛ו אֱלֹהִ֖ים כֵּ֥ן עָשָֽׂה׃ ס

노아가 만들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그가 만들었다.
2. 주석 연구
네피림에 관하여:
Genesis 1–11:26 ((1) Sons of God and Daughters of Men (6:1–4))
The presence of the Nephilim, then, was another evidence presented by the author to depict the wickedness that marked antediluvian society.
그렇다면 네피림의 존재는 홍수 이전 사회의 특징이었던 사악함을 묘사하기 위해 저자가 제시한 또 다른 증거였습니다.
Genesis 1–11:26 (1) Sons of God and Daughters of Men (6:1–4)

They are identified as “men of renown” (ʾanšê haššēm), not divine or semidivine figures. Despite their notorious achievements they are no more than “men,” subject to the same judgment as any (v. 3).

노아 시대에도 폭력을 일삼는 집단이 자신의 이름을 높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일 뿐이다.
Genesis: A Commentary Scene 1: Tyranny by the Sons of God and God’s Resolve (6:1–4)

Nephilim. Also called “heroes,” these are the offspring of the demonic tyrants filling the earth with violence (see 6:11; Num. 13:33). The Hebrew root (nāp̱al) means “to fall” and may suggest their fate (see Ezek. 32:20–28). God will not allow any tyrant to oppress and terrorize the land forever

여기 등장하는 네피림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영웅'으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땅을 폭력으로 채우는 마귀의 종들일 뿐이다. ‘네피림' 이라는 단어의 어근인 ‘니팔'이 ‘떨어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그들의 운명을 암시하는 것 같다.
Genesis: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The Ark Commissioned (6:13–22)

22. Noah’s entire obedience expressed entirety of faith; it is this that Hebrews 11:7 finds significant. It is also significant that God gave so crucial a task not to an angel but to a man, and one man at that; it agrees with his greater deliverance ‘through the obedience of the one’ (Rom. 5:19, RV). The initiative throughout is God’s: hence the reiterated God commanded (cf. 7:5, 9, 16), and the eventual ‘God remembered’ (8:1).

노아의 온전한 순종은 노아의 믿음을 보여준다. 한 사람의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은 거대한 구원의 역사를 이뤄가신다. 노아의 순종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순종의 미리보기이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온 것과 같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이 세상에 생명이 공급되었다. 첫 아담 안에서 우리는 죽음을 경험하지만, 둘째 아담 안에서 생명을 경험한다.
2. Insight / 묵상 주제
온 세상 사람들이 죄로 얼룩진 삶을 살아갈 때, 노아는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다시 말해서, 노아의 삶의 만족은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서 오는 것이었다. 노아는 이 세상의 친구, 이 세상의 문화, 이 세상의 소유에서 만족, 행복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주님과 동행하는 삶 속에서 ‘행복'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누구와 따뜻한 관계를 누리고 있는가? 내 삶 속에 나와 가장 친밀한 관계를 누리는 대상은 누구인가?
노아의 삶은 그 시대를 본받는 삶이 아니라, 그 시대를 거스르는 삶이었다. 오늘 이 시대 속에서 우리가 본받지 말아야 하는 모습에는 무엇이 있을까? 내 삶 속에 자리하고 있는 이 세상의 유행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
노아는 그 시대에 사람들이 주목하는 ‘용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에게 은혜를 입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은 사람이었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주목 받는 유명 인사가 되고 싶은가? 아니면 이 세상은 나를 전혀 몰라도 이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와 동행하는 삶을 원하는가?
고후 6장: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거대한 배를 지으라는 명령에 대해서 노아는 온전한 순종을 보여준다. 이것은 어떤 믿음인가? 노아는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한 경로를 받았을 뿐 그의 현실 속에서 어떤 특별한 체험을 한 것이 아니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것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이다. 노아의 믿음은 눈 앞에 마주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해석, 신학적 이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장차 다가올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이었다.
3. 적용 “본문은 하나님의 어떤 성품을 교훈하는가? or 본문은 나 자신의 성품을 어떻게 변화시키기를 기대하는가? or 본문은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는가?”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방법은 힘을 가지는 것이다. 폭력, 권력, 재물은 이 세상에서 나를 유명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겸손하게 하며 우리를 이 세상의 헛된 것들로부터 자유하게 한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유명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서 이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과 소망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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